본문 바로가기
나의 조현병 이야기

내 삶에서 매우 두려운 것, 중독의 뇌로 인한 조현병 재발

by yosdiary 2024. 10. 16.

조현병은 도파민 분비가 필요 이상으로 과다하게 (혹은 때때로 부족하게 - 항상성 때문) 분비되어 생기는 뇌 질환이다. 그래서 조현병의 약은 도파민을 억제하는 약(예: 인베가)이거나 도파민 분비 양을 정상범위로 조절해 주는 약(예: 아빌리파이)이다.
 
조현병이 걸리기 전의 나는 석사 시절에 (말씀드리기 민망하지만) 수학 공부를 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공부 때문에 일명 도파민 중독의 상태가 되었었다. 도파민의 특징 중 하나는 '조건 단서'가 충족되면 도파민이 분비되기 시작한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맛있는 음식을 보는 것'은 조건 단서가 되어서 도파민을 분비시켜 그 음식이 먹고 싶어지게 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수학 공부를 할 생각을 가지는 것'이 조건 단서였어서, 수학 공부를 할 생각만 해도 도파민이 뿜뿜 했었다.
 
이 '조건 단서'로 인한 도파민 분비의 특징은 조건 단서가 충족되면 도파민이 분비가 되기는 하지만 그 분비되는 양의 수치가 '기준선'(만족감을 느끼는 수준)에는 못 미칠 정도로 솟구쳤다가 오히려 금방 하락하는데(호르몬의 항상성 때문) 이때 하락하는 정도가 매우 커서 '평소'의 도파민 수치보다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뇌는 도파민을 갈구하게 되는데, 그러면 우리는 그 순간 뭐든지 도파민을 얻을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싶어 지게 된다.(예: 음식을 보고 먹고 싶어 짐.) 그래서 이 '조건 단서'가 '자주' 충족되면 도파민을 '자주' 갈망하게 되어 '도파민이 나오는 행동'에 중독이 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수학 공부를 할 생각만 해도(조건 단서) 무언가 도파민이 나오는 '행동'을 하고 싶어지게 되었다. 그 '행동'은 나에게 있어서 수학 공부였다. 수학 문제를 풀면 도파민이 뿜뿜 하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밤이었는데 잠을 청할 때도 낮에 풀지 못한 수학 문제에 연연하면서(미련을 못 버려서) 수학 문제를 풀고 싶은 생각(조건 단서)이 거의 매일 들었고, 그러면 잠은 다 달아나고 도파민이 뿜뿜 하는 수학 문제에 중독되어 잠자려고 누워는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낮에 고민했던 문제들을 풀어내느라 바빴다.
 
그렇게 점점 잠자는 시간은 줄게 되었고 어떤 날은 2, 3시간만 자게 되기도 했다. 심지어 꿈에서도 문제를 풀었는데 그런 꿈에서 깨는 날에는 더 이상 잠을 청하지 못하고 꿈에서 본 문제들을 풀고 싶지 않으면서도(자고 싶으니깐) 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는 날도 많았다.
 
원래는 석박사 통합과정을 하고 있는 나였지만, 내 두뇌는 점점 엉망이 되어갔고, 수학 공부 중독은 오히려 내 삶을 망가지게 했다. 결국은 박사과정은 포기하고 석사로 졸업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망가진 두뇌로는 학업을 따라가기 벅차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한 과학자의 실험 연구를 살펴보자. 어떤 과학자(이름은 생각이 안 난다)가 일주일 간 쥐에게 코카인(도파민을 급격히 높여주는-평소의 1000배 가량(섹스가 평소 수치보다 2배 높여준다)- 마약)을 주사하는 실험을 했는데, 이 실험에서 그 과학자는 코카인 주사를 맞은 쥐가 얼마나 날뛰는지 살펴보았다. 첫날에는 그리 심각하지 않게 행동하는 듯했다. 하지만 쥐가 주사를 맞고 날뛰는 정도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증가하였고, 마지막 7일째 되는 날에는 광란의 질주를 하면서 날뛰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결과 보다 더 중요한 실험은 다음에 있었다: 그 실험 쥐는 이후 수명이 거의 끝나갈 무렵(1년 뒤)까지 코카인을 맞지 않았는데, 그 쥐에게 죽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코카인을 주사하니, 그 쥐는 코카인을 처음 맞았던 날의 반응이 아닌 7일째 마지막으로 맞았던 날처럼 광란의 질주를 하면서 날뛰었다고 한다. 쥐의 뇌는 코카인이 주는 도파민에 대해 과거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도파민이 뇌를 '영구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한다.
 
이 실험 연구 결과를 이야기 한 이유는, 석사를 졸업한 후의 내 삶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석사를 졸업했고 더 이상 수학을 공부할 이유가 없었지만, 졸업하고 나서도 수학 공부 생각(조건 단서)은 여전히 났고 그래서 수학 문제를 푸는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의 뇌는 실험의 쥐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한 것이었다. 졸업만 하면 꿀잠을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변화한 나의 뇌는 나로 하여금 잠에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니 망상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 후 6개월 정도 더 지나자 나는 정말 이상해질 만큼 이상해졌고, 환각도 경험하게 되었다. 부모님께서도 점점 나를 이상하게 여기시게 되었고 결국 응급차에 실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병명은 환각에 망상을 동반한 조현병이었다.


나는 현재(2024년 10월) 조현병 6년 차이다. 그동안 나는 약을 먹으며 도파민 갈망을 일으키는 이 조건 단서(수학 공부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무진장 애를 썼고, 다행히도 지금은 더 이상 수학 공부하는 생각이 조건 단서가 되지 않게 되었다. 이 치료과정 중에서 나는 자주 조건 단서 충족(수학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겪어 그때마다 박사과정을 갈망했지만 위의 쥐 실험 결과를 읽고 나서는 박사과정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만약에 박사과정을 밟게 된다면 분명 나는 죽기 전 다시 한번 코카인 주사를 맞고 광란의 질주를 했던 쥐처럼 다시 예전의 수학 공부 중독의 나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치료기간 동안 나는 새로운 조건 단서를 가지게 되었다. 수학 공부를 못하니 다른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분야는 데이터 분석이었다. 이 데이터 분석을 '공부'할 때는 전혀 조건 단서가 없었지만 '실전'에서 프로그래밍을 돌리기 시작하였는데 '프로그래밍을 돌리기 시작한 직후부터 프로그래밍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시간 동안 도파민이 나오는 것이었다. 결과가 너무너무 궁금하니 도파민이 나오는 것 같았다.(마치 승마 도박에서 승마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결과가 나오기까지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도파민이 나오는 것과 같았던 것 같다.) 프로그래밍을 돌리고 나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시간은 프로그래밍에 따라서 1분짜리도 있지만 하루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 넘게 프로그래밍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도파민이 밤새 나오는 것을 몇 차례 경험하게 되고 다시금 이것 때문에 잠을 청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생겼다. 즉 다시 중독의 뇌로 돌아간 것이었다.
 
새로운 조건 단서는 '프로그래밍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프로그래밍을 한번 돌리기 시작하면(조건 단서) 순간적으로 도파민이 기준치 직전까지 분비됐다가 완전히 하락하게 되는 것 같았고, 그러면 나는 낮아진 도파민 때문에 도파민 분비를 갈망하게 되면서 도파민이 나오는 '행동'을 하고 싶어 졌는데 이 '행동'은 바로 프로그래밍의 결과를 기다리면서 '기대'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앞서 말한 것 처럼 프로그래밍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대하는 시간이 길면 하루가 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문제는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다른 할 일들이 많은데도 할 일들을 하지 않고 프로그래밍의 결과만 기대하며 하염없이 프로그래밍이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만 하며(프로그래밍이 돌아가는 동안 중간 결과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데, 그 중간 결과들을 지켜보는 것이 나에게는 엄청난 중독이었다. 왜냐하면 그 중간 결과들을 지켜보면서 최종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 따라서 최종 결과를 예측하면서 기대감이 생겨 도파민이 엄청나게 나오는 것 같았다. - 프로그래밍이 돌아가는 도중에 나오는 중간 결과들을 구경하며 최종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마치 경마 도박에서 말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경기 결과를 예상하며 도파민이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 결과 나는 데이터 분석가 직업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일을 적게 하게 되었고(프로그래밍을 돌리기만 하면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가 않고 집중력도 감소했었고 계속해서 프로그래밍이 돌아가는 동안 중간 결과들만 하염없이 보면서 최종 결과만 예측할 뿐 그 시간 동안 다른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자주 상사에게 일을 '못한다', '안 한다' 등등의 피드백을 듣기도 했다.
 
이런 '프로그래밍 중독'으로 나의 뇌는 위의 쥐 실험 연구 결과처럼 다시 중독의 뇌로 되돌아왔고 매일 프로그래밍을 돌리지는 않았지만 일주일에 3,4번 정도 프로그래밍을 돌리면서 다시 잠을 못 자게 되는 나날들이 늘어나게 됐고, 거기에 직장 스트레스까지 더해져서 다시금 불면증이 심해졌다. 이런 상태가 4~5개월 지속되자 나는 다시 주변사람들도 느낄 만큼 이상해지기 시작했고 퇴사를 선고받은 날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병이 재발하여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었다.


현재는 재발한 지 1년 6개월즘 지났다. 그동안 나는 이전에 수학 공부를 포기했던 것처럼 같은 이유로 데이터 분석가 직업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었지만, 한 때 데이터 분석 대회가 있어서 참가한 적이 있었는 데 역시 나의 뇌는 금방 중독의 뇌로 되돌아갔고 다시금 잠을 못 자는 경험을 하게 됐었다. 금세 중독의 뇌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 대회가 끝나고서야 나는 다시 데이터 분석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경험을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니 얼마 전(1달 전)에 '다시 데이터 분석을 해볼까?' 잠깐 했던 생각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내가 만약 다시 데이터 분석을 하게 된다면 분명 앞전에 소개했던 쥐와 같은 꼴이 날 게 뻔하다. 분명 조건 단서가 다시 충족되기 시작할 것이고 그러면 나의 뇌는 다시 중독의 뇌로 변하고 불면증이 찾아올 것이다. 이것은 마치 금연 또는 금주를 시도하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금연, 금주에 분명 성공했다가도, 어떤 조건 단서 때문에 도파민 갈망의 상태가 되면 다시 담배나 술을 입에 대게 되는데 그 당시에는 '한 모금만'이라고 생각하고 입에 댔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다시 예전처럼 혹은 그보다 심한 정도로 쉽게 담배와 술에 중독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금연, 금주를 완전히 성공하는 방법은 금연, 금주를 하고 나서 평생 동안 다시 담배나 술을 입에 대지 않으려는 마음 가짐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금연, 금주에 성공하고 나서도 중독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아주 가끔씩' 담배나 술을 하는 데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그 과정도 순탄치 않다고 하며-피나게 고통스러운 우여곡절의 시간(그 과정 중 다시금 중독의 기간을 몇 차례 경험한다)들을 경험한다고 한다- 매우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라고 한다.-매우 높은 확률로 자칫 잘못하면 중독의 정도가 이전보다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이전에 했던 두 가지 일을 하면서는 이미 중독의 뇌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 일들은 다시 시도하기가 두렵다. 이 두 가지 일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시 새로운 일을 찾아봐야 하는데 또다시 중독의 뇌가 활성화될까 봐 가장 무섭고, 그래서 이런 중독의 뇌로 되돌아가지 않을 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 중에 있다. 내 바램은 꽤 괜찮은 직업이면서 중독이 일어나지 않는 일을 찾으면 좋겠다.


Reference
 
애나 렘키. (2022). 도파민네이션. 흐름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