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평생 내가 잘 못하는 일이라고 주관적으로 판명이 나면 그 일을 아얘 놔버리는 습관을 가져왔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발견했다. 내가 아는 한 조현병 환우가 자신이 그런다고 한탄하는 투로 말을 흘렸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중고등학생 때 나는 국어, 영어를 지지리도 못했다. 그 결과, 나는 국어, 영어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인생이 실패의 길로 걸어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국어, 영어를 공부하는 대신 내가 잘하는 수학만 파고들었다. 그래도 다행히도 어느 정도 잘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석박사 통합과정에서, 나는 수학으로 박사를 해 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 후로 그냥 석사 졸업으로 만족했고, 더 이상 수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새로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좀 열심히 사는 것 같더니, 새롭게 도전한 공부를 꽤나 한 후 회사에 입사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일처리를 잘 못하자, 이 분야도 내 갈길이 아니겠다고 손을 놔버렸다.
그리고 백수로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은 시기다. 이렇게 내가 잘 못한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포기를 단행했고, 항상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섰다. 어떻게 보면 잘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 번쯤은 내 자신을 되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는 말은, 예를 들어 어떤 사업을 시작했는데, 잘 안되어서 또 다른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그렇게 여러 사업을 진전하다가 때가 되어서야 어느 사업을 성공시키는 일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듣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는 것은 잘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사업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어떤 일을 주관적으로 잘 못한다고 판결 내렸을 때, 그 일을 포기하는 것이 맞을까? 어쩌면 계속해서 노력하다 보면 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그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헤쳐나가면 잘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포기하는 것은 너무 이른 것이 아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또, 내가 이때까지 해온 것들이 다 무용지물 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열심히 해왔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면 미래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 누군가가 말한 것과 같이 존버가 답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도대체 무엇이 정답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쉽사리 실패한 경험이 있는 일은 손에 다시 잡지 못한다. 내 천성이 그런 것일까? 그냥 새로운 거 찾고 찾고 하다보면 언젠가 나와 맞는 일자리가 나타나는 것일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에게 찰떡궁합인 일이 나타나는 것일까? 내가 아는 조현병 환우는 연애를 그런 식으로 하다가 정말로 결혼을 잘한 케이스가 있는데, 나도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나랑 정말로 적합하게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한편, 내가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일을 다시 손에 잡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봤을 때, 보통 소진(번아웃)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다시 손에 잡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심각한 소진의 트라우마로 인해 다시금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한번 소진 경험이 있는 실패한 일들은 다시 시도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다른 것을 찾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이런 행동들은 나를 트라우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이 꼭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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