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9년 2월 경에 조현병 초발을 경험했고 딱 4년이 지난 2023년 2월 경에 재발을 경험했다. 그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재발 직전에 무수히 많은 재발 신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치를 채지 못했고 그렇게 나의 경험을 통틀어서 제일로 무서운 경험인 재발을 맞이했다.
돌이켜보면 의사 선생님의 무던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약을 줄이기 시작한 게 시발점이었다. 그 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약을 먹으면 두뇌 회전이 느리게 되어서 일에 지장을 주었고 여기서 밝히기는 힘든 부작용도 겪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약을 줄이기로 결단하고 의사 선생님께 간청하여 몇 가지 약은 빼버리기도 하고 또 '조현병 주 치료제'(리스펜)의 용량도 줄였다.
그 당시 의사 선생님은 분명히 경고를 주셨었다. 재발할 수 있다고, 괜찮겠냐고, 후회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 당시 재발이 무슨 대수겠냐고 여기고 (지금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내 주위에 조현병 환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어서 재발의 경험이 그토록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이야기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 뜻을 관철시켰다.
처음에는 좋았다. 약이 줄어드니 두뇌회전도 다시 빨라지고 내가 그토록 힘들어하는 부작용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점점 잠을 설치기 시작했고, 그 무렵 나는 수면제를 추가해서 타먹기 시작했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수면제도 처음에만 효과가 직빵이다. 일명 수면제 중독이라는 현상이 나타나면 수면제의 효과가 확 떨어져서 결국에는 수면제를 처음 먹기 시작했을 때의 용량으로는 충분한 수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게 되고 그래서 수면제의 양을 점점 늘려가야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하지만 아! 수면제도 부작용이 있었으니, 나는 결국 수면제의 용량은 늘리지 않고 그냥 먹기로 했다. 즉, 수면제를 아얘 먹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수면효과는 그닥 좋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발 징후 싸인 중 가장 중요한 징후인 수면부족이 시작되었다. 그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회사에서 멍한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것과 심하면 졸기까지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상사한테 지적을 받는 일이 많아졌고, 회사에서 인간관계는 바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모든 상황을, 내 삶이 비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였다. 그냥 내가 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고 여길 뿐이었다. 그 당시 나는 일을 시작한 지 6개월도 안된 새내기였기 때문에, 그냥 막연히 나한테 관련 지식이 부족한 것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하,, 부끄럽게도 그 당시를 기억하자면 직급으로는 상사인 내가 오히려 밑에 사람한테 '내가 무슨 일을 하면 되겠냐'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이상해져 있었다. 내가 일을 못하다 보니 나보다 일머리가 뛰어나다고 느끼는 밑에 사람한테 프로젝트의 리더를 맡기고 그에게 자문을 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왜 그랬나 궁금하다. 어찌 됐든 그때부터 내 회사 생활은 완전히 꼬이기 시작했다.
그 밑에 사람은 점점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점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무안을 주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나의 자신감은 점점 바닥으로 하락하기 시작했고, 점차 주객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그의 주도권 아래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 밑에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대략 아래와 같았다.
나: 저기,, 저는 뭘하면 될까요?
밑에 사람: 아~ 저도 모르죠~ 그걸 저한테 물어보면 어떡해요. ㅡㅡ. 정 할 게 없으면 새로운 알고리즘이나 한번 찾아봐요. 뭐 찾아봤자 거기서 거기겠지만.(이 말 뜻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실력이 없어서 찾아보나 마나 거기서 거기일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라고 느끼기도 했지만, 이미 어느 정도의 수준이 나오는 알고리즘을 찾았기 때문에 다른 알고리즘을 찾아봐도 그 보다 좋은 알고리즘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도 있었다고 느꼈다.)
(3일 후)
나: 저기,, 하나 찾아내서 코딩을 한게 있는데... 생각보다 성능이 잘 안 나오네요.. (나보다 실력자니 이 코딩을 변형시켜 높은 성능을 낼 수 있게 수정해 줄 것을 기대하며) 그래도 한번 보실래요?
밑에 사람: 알았어요. 노션에 올려놓으면 볼게요.
(작업)
나: 다 올렸어요.
(프로그래밍 돌리는 작업)
밑에 사람: 이거는 의미없을 것 같은데요. ㅡㅡ. 속도가 너무 오래 걸리잖아요. 이 정도 속도면 최소 일주일은 넘게 걸리는 데 장난해요? 어느 누가 일주일이나 걸라는 솔루션을 사겠어요.
나: 00 컴퓨터에서 돌렸을 때는 3일정도 걸렸습니다. 그리고 처음 한 번만 그 정도 시간이 걸리고 그 후에는 어차피 적은 용량의 데이터에 적용할 거니깐 크게 상관없지 않을까요?
밑에 사람: 그거를 누가 몰라서 그래요? 안 그래도 바쁜데 00씨 때문에 그 컴퓨터를 아무도 못썼잖아요. 그 컴퓨터가 우리 회사에서 젤 빠른 컴퓨터인데 그럼 주기적으로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거는 어떡할 건데요? 그때마다 그 컴퓨터를 쓸 건가요? 다른 컴퓨터에서는 최소 일주일이 걸릴 거예요. 시간이 일주일 넘게 걸리면 고객분들은 고사하고 그 일주일 동안 우리는 컴퓨터 한 대는 못쓰게 돼요. 안 그래도 회사에 컴퓨터도 부족한 마당에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요. ㅡㅡ. 그나저나 성능은 어때요?
나: 00 알고리즘보다 조금 높게 나왔는 데 그렇게 큰 차이는 안나요. 00 수치가 00입니다
밑에 사람: 00 모델에 적용시켰나요?
나: 네
밑에 사람: 그 모델은 원래 잘 나오는 모델이잖아요. 우리가 그 모델에만 적용시키는 게 아니라 다른 20개의 모델에도 적용시켜야 되는 건 알죠? 다른 모델들은 저번에 00 알고리즘으로 시험해 본 결과를 봐서 아시겠지만 성능이 그리 좋게 안 나올 수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오래 걸리는 알고리즘을 20개의 모델에 다 적용하면 20주나 걸려요. ㅡㅡ 그것도 생각 안 하시나요? 5개월 동안 그것만 주구장창 돌리실 건가요? 이래선 이건 쓸모없어요.
나: 네..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죄송합니다..
밑에 사람: 제 생각엔 새로운 알고리즘보다는 전처리를 해야 할 것 같으니깐 전처리를 좀 해봐요.
나: 네 알겠습니다. (성능을 높일 수 있는 전처리 방법을 알지 못함)
(인터넷으로 전처리 방법에 대해서 좀 알아 본 후)
나: 00씨 제가 인터넷으로 좀 찾아봤는데요,, 어떻게 하면 전처리로 성능을 높일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서요..
밑에 사람: 에휴~ ㅡㅡ. 지금은 제가 좀 바쁘니깐 나중에 이야기해요.
나: (한 1,2분 후에 이제 무슨 일을 해야 될지 몰라서) 혹시,, 그럼 저는 무슨 일을 하면 될까요?
밑에 사람: 지금은 제가 바쁘니깐 좀 쉬고 있어요. (내 상사도 이 말을 들음.)
(1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긴 뭐해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좀 찾아봤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음)
나: 저기,,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있을까요? (다들 내가 할 줄 모르는 작업을 하고 있어서 좀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음)
밑에 사람: 아 아까 제가 좀 쉬고 있으라 그랬죠? 정 그러면 00씨가 자신있어하는 알고리즘이나 찾아봐요.
나: 찾아봤는데 제 수준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알고리즘 밖에 없어서..
밑에 사람: 그럼 일주일쯤 후에 중간 보고서 올려야 되니깐 00 작업을 해서 시각화하는 작업 해주세요. 그건 할 수 있죠?
나: 한번 해볼게요.
나: 다 했어요. 노션에 올려놨습니다.
밑에 사람: 지금 좀 바쁘니깐 나중에 확인해 볼게요. 좀 쉬고 있어요. (내 상사도 이 말 들음.)
밑에 사람: 00씨 제가 00씨가 작업한 거 봤는데요, 아니 딸랑 00만 하면 어떡해요. 이렇게 쉬운 작업도 이것밖에 못해요? 이래서 어떻게 보고서에 올려요? 00작업이랑 00작업, 00작업은 할 줄 몰라요?
나: 아.. 할 줄 알아요. 그걸 생각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지금 다시 해서 노션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밑에 사람: 하.. 이렇게 일일이 다 말해줘야 하나요? 나 원참.
나: 다해서 노션에 올렸습니다
밑에 사람: 지금 확인해 볼게요. (확인 중.) 잘했어요. 일단 쉬고 계세요. (내 상사도 이 말 들음.)
나: 뭐 다른 할 일은 없나요?
밑에 사람: 00씨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좀 쉬고 계세요. (내 상사도 이 말 들음. 그렇게 나의 쉬는 시간은 점점 많아지고 멍해지는 시간과 조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 모든 일을 들은 나의 지인은 그 당시에 마음이 아프지 않았냐고 필자에게 물은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감정이 매우 무뎌져 있었던 것 같다. 전혀 상처가 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거의 무감각해서 상처는 거의 받지 않았고 그저 모자란 내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때는 그게 그렇게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져서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렇게 나의 회사 생활은 점점 꼬이기 시작했고, 언젠가 그 밑에 사람은 나의 상사와 1:1 면담을 하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서 며칠 뒤 상사는 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상사는 나에게 왜 이렇게 일도 못하고 사회생활을 못하냐고, 몇몇 사람들이 00씨를 별로 안 좋게 생각하는 건 알고 있냐고 물었다. 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내 입꼬리는 항상 밑으로 내려가 있고, 항상 불쾌한 인상을 준다는 피드백도 받았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는 아무 말도 못 한채 그저 침울해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잠깐 앉아있어 보라고 하며 잠시 방을 나가더니 다른 선임연구원을 데려와 앉혔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이 이제부터 프로그래밍 돌리는 컴퓨터를 쓸 때면 00 선임연구원의 허락을 받고 쓰라고 하였다.(나도 그 당시 선임연구원이었다.) 00씨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렇게 나는 프로그래밍 돌리는 자유도 빼앗기고 그래서 할 일이 더욱 없어진 나는 점점 쉬기만 하고 멍하게 있기만 하고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조는 시간도 많아져서 상사에게 지적도 많이 받고 나는 점점 어찌할 줄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상사로부터 '아무래도 00씨와는 더 이상 같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수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고쳐질 기미가 안 보이고, 사회생활도 못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때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아니라고, 다시 생각해 봐주실 수 없냐고, 죄송하다고, 더욱더 노력해 보겠다고, 무진장 애를 썼다. 그러자 다행히도 생각해 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곧 나는 또다시 졸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화가 난 상사가 다시금 나를 불렀다.
상사: (매우 큰 소리로) 00씨! 제가 졸지 말라고 했죠? 도대체 집에 돌아가서는 뭐하는 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을 봐요. 누가 00씨처럼 조는 사람이 있나요?! 당장 회의실로 들어와요! 얘기 좀 해야겠네요!
나: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무념무상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음. 약간의 반항끼가 있었음.)
상사: 00씨! 뭐해요? 내 말이 우습게 들려요?
나: (그래도 가만히 앉아있음. 무념무상.)
상사: 지금 나랑 장난해요? 하 참.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나: (가만히 앉아있음. 아무 말도 못 함.)
상사: (노려보다가 콧방귀 뀌고 회사밖을 나감.)
그 일이 있은 후 사람들은 수군수군 대기 시작했고, 5분이 지나니 드디어 나에게 이성이 돌아왔다. 이성이 되돌아오자 나는 매우 큰 두려움을 느꼈다. '아! 이젠 끝이다. 정말 끝이야. 돌이킬 수 없이 나는 짤리겠지.. 아 어떡하지?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드리지? 여기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 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나는 정말 모자란 사람인가,,? ㅜㅜ'. 그러고 상사는 몇 분 후에 들어오더니 화가 좀 누그러 뜨려 진 채로 나에게 면담을 하자고 이야기했다. 상사는 '00씨와는 정말 일을 같이 할 수 없겠어요, 이제는 대표님한테 이 모든 사실을 알릴 것이에요'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그 후 하루는 대표님과 면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것저것 묻는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도 못하고 우물쭈물 자신감이 바닥인 채로 대답하며 면담을 마쳤고 대표님은 생각해 보는 시간을 좀 가지고 다시 면담하자고 말씀하셨다.
그 사이 나의 인지능력은 점점 하락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말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시작했고, 이상하게 사람들의 말이 외계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참 이상한 점은 그때 내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쯤이면 무언가 두려움을 느껴야 될 정돈데 그런 자각조차도 없이 회사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그저 내가 모르는 지식이겠거니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 내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무튼 내가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다시 설명해 달라고 몇 번 말하자 점점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 시작하였고 몇몇 사람들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들을 아마도 대표님은 보고 받았을 것이고 다시금 면담을 했고 결국 퇴사를 통보받았다. 그리고 나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무너무 더워서 바닥에 대자로 누우면 좀 시원해지겠지라는 생각에 바닥에 드러눕기도 하고 그 외에도 말하기 부끄러운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짓들을 했다.
그리고는 그날 몇 시간 정도 아얘 기억이 없다. 같은 날 나는 면담한 기억조차도 없는 대표님과의 두 번째 면담에서 나는 그냥 피식피식 되며 반응만 할 뿐이었다고 전해 들었고 그 외에도 이상한 짓거리를 많이 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께서 대표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상황을 설명받으셨다고 한다.)
어김없이 6시가 되었고 그때서야 나는 꿈에서 깬듯한 몽롱한 느낌으로 회사를 두리번거린 기억이 있고 한 동료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잠바를 입고(이상하게 잠바도 반틈만 입었다. 한겨울에.) 짐을 정리하고(동료가 모든 짐을 가방에 넣어주었다.) 회사를 나왔다. 그때 마지막으로 대표님과 인사를 나눈 기억이 있다.
그리고는 나의 악몽의 밤이 시작되는데 이는 2편에서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들고 돌아오겠다.
2024.08.15 - [나의 조현병 이야기] - 조현병 재발 때의 나의 경험 기억 - Part 2. 조현병 재발의 밤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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